
한국의 사회복지제도 발전 과정 및 이에 대한 고찰
1. 서구복지국가와의 비교
서구복지국가의 등장은 1차 대전을 거쳐 192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로써,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주요 나라에서는 자유주의의 흐름을 거쳐 사회복지에 관한 국가개입주의가 서서히 대두되었고, 사회보험이라 불리는 새로운 제도적 쇄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구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산업 사회의 도래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 속에서 복지제도의 출현을 맞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복지 제도는 공황과 전쟁 등 다양한 계기와 경로를 통해 여러 다른 복지 제도들을 거치면서 크게 확대되었고, 경로 의존성과 제도적 힘의 균형 아래서 하나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이후 각국의 복지체계는 산업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위험과 그것의 해결을 위한 국민의 압력, 그리고 2차 대전의 경험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성장과 사회주의 운동의 발달, 경제 공황이라는 배경 하에서 점차 발전, 확대되어 갔다.
한편, 제2차 대전이 종결된 후부터 1970년대 까지는 복지국가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기로, 위에서 설명한 정착기 동안 제도적, 재정적, 수혜자 측면에서 확고하게 정착된 복지국가가 2차 대전 이후 약 30년간 지속된 경제적 번영과 더불어 여러 측면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이 극대화되었다. 서구의 주요 산업 국가들은 정착기, 확장기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복지국가모형을 구축해나갔으며, 이들 여러 나라들은 서로간의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지 않은 편차를 보이면서 각자 발전 형태의 양상을 보이며 복지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러한 복지 국가의 발전을 일반화하려는 이론들이 등장하였고,대표적으로 산업화 이론, 권력자원 이론, 민주주의와 선거 경쟁론, 국가 중심 이론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각각의 이론들은 서구의 다양한 복지 국가의 서로 다른 발전 형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후기 산업 국가로서 한국은 경제 성장이 복지 확충으로 이어지지 않는 복지 저발전의 사례, 즉 서구복지국가 발달 이론 중 산업화 이론의 일탈 사례로써 주로 취급되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복지제도 발전은 산업화 이론에 반하여 고도의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지출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노동자 권리와 일반적인 사회권의 발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산업화 이론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선거 경쟁론, 권력자원론, 국가중심이론 역시 한국의 복지 저발전 현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즉, 민주화의 달성, 노동 탄압의 종결과 노동권의 보호, 국가 관료제의 발달과 같은 복지 국가 발달 전제의 확보에도 불구하고 복지 제도 발달과 사회 지출 수준은 여전히 미약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제도적, 정책 효과적 측면에서 한국 정당의 구조와 역할, 노조의 형태, 선거 제도 등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기존의 복지 국가 이론을 적용하여 한국의 저복지 상태를 충분히 설명하기엔 불충분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러한 복지 저발전 상황을 한국적인 사회, 정치적 요인으로 살펴볼 필요성이 있으며, 주요한 요인으로 국가 중심적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과 노동계급 요인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중심적 설명은 한국 복지제도의 발전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는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이며, 경제적으로는 극단의 경제 우선주의에 기반한 압축, 고도성장을 추진한다.
여기서 발전국가는 국가복지의 발전을 경제성장에 반하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억제하는 한편, 발전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 따라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수단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따라서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혹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한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채택되고 개발된다.
즉, 한국 국가 복지의 저발전은 국가 형성의 과정에서 국가엘리트들이 취한 정치적 결정과 전략의 결과물로서 설명된다는 것이다. 한편 노동계급 요인을 강조하는 계급론적 입장은 한국의 억압적 정치체제가 노동 계급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함으로써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이 정치 과정으로부터 훨씬 더 소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노동자 복지 전반의 저발전을 초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국가 엘리트들의 국가 형성에서의 역할과 전략을 강조하는 국가 중심적 관점에 비해 국가 엘리트들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취하는 계급적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을 보호하고 육성시키는 한편 노동자계급은 오로지 산업화의 도구로만 간주했을 뿐 복지제도를 통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포섭하는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노동의 단결 된 힘이 복지국가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비춰볼 때 노동 계급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조치를 취해온 자본 친화적인 전략과 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복지 국가 형성이 늦춰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2. 사회복지제도 개혁의 목표와 방향
한국이 진정한 복지국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목표와 방향으로써 보편적 복지가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다. 즉 가장 가난한 계층만을 대상으로 삼는 영미식 선별주의적 복지가 아닌 중산층을 포함하여 국민의 다수가 수혜자이자 부담자가 되는 국가 복지체계를 성립하여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사회권에 근거하여 필요와 요구를 가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회 서비스에 대한 공적 책임의 원리를 의미하며, 이에 필요한 재원은 사회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는 각종 위험과 불안에 대한 사회적 대처 기제로써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협력의 토대를 마련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계층적 통합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보편주의 복지체제의 경우 행정적으로 간단하여 행정비용을 줄이므로 거시적으로 효율적이며, 사회서비스에 대한 형평성과 사회적 평등 수준을 높여주고 사회적 낙인을 최소화하여 사회통합을 가능케하여 인적자본과 사회적자본을 증대시킬 것으로 기대 된다. 보편적 복지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의 법제화가 요구되는데, 여기에는 국민연금, 상병급여, 고용보험 등과 같은 금전적 급부를 제공하는 제도 뿐 아니라 보육, 의료, 교육 등의 사회 서비스와 국민 개개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잠재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적극적 복지 제도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이는 복지가 예방적, 보상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국민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써 작용하여 사회 투자 전략의 일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를 통한 사회 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도 복지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고용은 복지국가의 근간으로 복지국가의 유지가능성과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지속 가능한 복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조세와 사회보험기여를 통해 국가 복지 재정을 지탱하는 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은 사람이 노동력을 상품화하고 있을 경우 국가가 그만큼 재분배 부담을 덜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복지 국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높은 고용률을 달성해야 하며 이를 위한 노동 시장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통합적 노동시장으로의 변화로써, 노동 시장의 중심과 주변의 격차를 줄이고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초기업별 노사관계로의 전환은 통합적 노동시장의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직적이자 수평적인 형태의 노동시장 전체에 대한 노사 자율적 보호가 초기업별 노사관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별, 지역별 그룹별 노동조합을 활성화하고, 각 수준별 단체교섭을 지원하는 법 제도적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로써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해기 위해서는 그 재원을 마련할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재원의 마련은 예산의 낭비를 줄이고 탈세를 억지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철저히 과세하는 반면 사업소득은 상대적으로 소득 포착율이 낮고 탈세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OECD 대비 소득세 비중이 법인세 및 소비세에 비해 크게 낮으므로 소득세의 실효세율을 일정 수준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 재원 마련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비과세 및 감면 혜택의 과감한 축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세정책은 정부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이나 개인이 납부해야 할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의 감면 혜택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됨으로써 조세의 공평성과 효율성 및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금융소득과 같은 불로소득에 대한 공평과세를 확립하고 자영업자들의 탈세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제도 개혁도 뒷받침 되어야한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면 과세표준 구간이나 세율 조정을 통해 세수를 추가 확보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복지지출의 증가와 이를 위한 재원의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다소의 시차를 두어 복지 프로그램을 먼저 확대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정당성을 바탕으로 조세 정의와 세수 증대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혁을 시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그 지속성을 잃고 있다.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로 인해 실업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하였고, 시장 복지의 불확실성과 가족 복지의 해체를 이끌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로써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를 열어야 할 당위성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