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디어법 개정안 통과 당시의 소회

미디어법 개정안

미디어법 개정안 통과 당시의 소회

1) 개요

지난 2009년 7월 논란 속에 개인 혹은 기업이 두 가지 종류 또는 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산업을 소유하도록 허용하는 교차 소유 허용 등의 방송 자유화 정책을 핵심 골자로 하는 일명 미디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가결 되었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더불어 미디어법은 입법 계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논쟁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방송 공영론자들과 방송 시장경쟁론자들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논쟁은 미디어법 개정이 방송 산업과 한국 사회에 미칠 효과와 미디어 관련법의 올바른 준거점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서론

원론적으로 방송 공영론자들은 제한적으로 이용 가능한 전파 자원을 통해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가 특정 사익에 지배되지 않고 일반적 사회이익 혹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해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방송이란 수용자의 여론, 문화 형성에 기여하며 다양하고 다원적인 집단의 참여와 의견 개진이 보장되는 민주적 공론영역으로서의 방송이어야 하며 여론, 문화 형성 매체로서 정치,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해야함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미디어가 궁극적으로 수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극대화시키는 한편 사회 통합,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민족 문화의 보존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간주되는 목표를 달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공영론자들은 미디어법 개정을 통한 거대 자본의 방송 사업 진출이 방송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 수행 과정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자본화 된 방송 매체는 여론, 문화를 오도하는 일종의 권력기관의 행태를 보일 수 있으며 여론과 정보 독점을 통해 정치권력, 거대 기업과의 유착 관계를 마련하고 이에 근거한 자의적인 방송 행태는 수용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복지를 훼손시키는 방송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공영론자들은 정부가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방송 영역에 개입하여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 정책과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공영론자들의 입장은 미디어의 사회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방송의 공익성을 수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며 언론의 독립성,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공익의 달성과 공공에의 책임을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라는 비판과 함께 방송 산업 발달의 한계, 공영 방송 조직의 비효율성과 조직 운영의 방만함, 방송 컨텐츠와 품질 개선의 한정성은 공영론자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하여 기존의 공영 중심의 미디어 정책이 불신을 받게 된 원인에 대한 자기 반성과 그동안 도외시해 온 방송 미디어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 무엇인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반면 방송 시장경쟁론자들은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탈규제화를 통해 방송 시장에서의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방송의 민주화와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 및 문화,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방송 시장 진출을 막는 것은 여론의 다양성 추구에 위배될 뿐 아니라 방송에 대한 규제는 명백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는 것이다. 또한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신문, 방송 겸영의 교차 소유 허용이라는 세계적인 탈규제화 추세 속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방송 산업의 육성이라는 슬로건은 미디어법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 동안 방송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정당화시켜 주던 이유 중 하나인 전파의 희소성 논리 역시 기술적 발전을 통해 무력화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문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방송 시장의 규모와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신문사의 방송 시장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음에 주목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방송 부문 소유 규제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과도할 뿐 아니라 방송 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이 필요하기에 미디어법을 통한 규제 완화를 바탕으로 신규 사업자의 방송 시장 진입과 추가 자본 유치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 투자 여력을 확보한 사업자 간의 컨텐츠 품질 경쟁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체적인 방송 품질의 향상을 기대한다. 이는 미디어법이 현재의 지상파 방송사들의 독과점적 방송 지배 구조를 극복하여 방송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방송을 시장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으로 방송 산업 역시 경제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며 거대 자본의 투입, 경쟁의 촉진 등을 통해 방송 산업의 성장과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은 국내 상황에서 규제 철폐가 국가 경쟁력과 방송 산업 경쟁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미미할 것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단기적으로는 경쟁이 촉발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과점이 심화되어 여론 다양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한편 공적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방송이 상업화돼 자본에 의해 좌우되고 일부 기업이나 특정 정치 집단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새롭게 방송 시장에 참여할 거대 신문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특정 정파와 정치적 견해를 옹호하는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방송사의 수의 증가가 여론의 다양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여론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3) 본론

방송은 인간의 정신과 가치를 다루는 일종의 문화적 재화라는 점에서 정신적, 물질적 가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단순히 시장경쟁론자들의 주장처럼 방송시장의 경쟁 도입이 방송의 질적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품 시장 경제에서 기업은 소비자들의 수요에 의해 상품을 생산하고 타기업과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품질 경쟁이 일어나고 이는 상품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의 경우 수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오히려 방송의 질을 하락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양한 채널 선택권을 가진 수용자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의 방송에 눈을 돌리게 되고 상업주의적 논리에 의해 방송사들은 방송의 질보단 수용자의 눈을 사로 잡을만한 자극적인 방송 컨텐츠 제작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방송 프로그램의 지나친 상업성과 질적 하락, 다양성의 추구보다는 시청률 쫓기에 급급한 프로그램 편성 경향, 자본 권력에 의한 여론 시장 독점 현상과 같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지상파방송의 경우 공적인 지분 구조 특성상 보도 내용의 공영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완전 사적 영역으로 개방된 이외의 방송 시장은 공영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방송의 탈규제화를 반대하는 공영론자들의 핵심 주장은 방송의 공익에의 봉사이다. 하지만 규제에 의한 제한적인 방송이 공익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시대에 따른 욕구 변화로 다양하고 질적으로 향상된 컨텐츠를 제공받길 원하는 수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일관된 획일적 규제 정책의 정당성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채널들이 존재하고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접근 가능한 상황에서 방송 채널 몇 개가 신설되는 것을 막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여론 형성 기능이 강한 전국 규모의 종합 일간지가 만약 방송사를 통해 뉴스를 제공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다양한 여론 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시선 또한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영 방송이 외견상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 완화를 통한 문제점 또한 공영론자들의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정당한 규칙에의 합의, 바람직한 목표의 설정, 상호 신뢰 등 일정한 제한적 상황 요건 속에서만 그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신문, 방송 겸영을 허용하되 방송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다양한 규제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방송 독립성 확보와 공정한 경쟁 방안의 모색, 시장에서의 공익성 구현을 위한 준거 설정 방안의 모색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정된 미디어법은 변화하는 방송 환경과 다양화 된 방송 수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것이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논쟁과 협의를 통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친 논리나 주장을 고수하게 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최적의 정책적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최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발전적 논쟁을 위한 자기반성이 없다는 점에 있다. 미디어법이 개정 된 상황에서 방송 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다양한 채널이 방송을 통해 공익에 부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며 이것은 탈규제와 규제의 미묘한 균형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탈규제화의 추세를 타고 강행된 미디어법 개정 이후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이 종합편성채널로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빈약한 편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며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방송사들은 매년 수백억씩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자본 투입이 요구되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 속에서 밥그릇을 둘러싼 서로간의 치열한 경쟁과 견제를 겪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방송사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살아남기 경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너무 많은 사업자를 선정한 시점에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편향된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일부 국회의원들은 종편채널과의 인터뷰마저 거부하기도 하며, 이미 포화된 채널과 컨텐츠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종편 채널은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종편 방송사들은 지상파 방송과의 경쟁은 둘째 치고 케이블 채널과의 경쟁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술 발전과 정책적 규제 완화로 한국 방송의 새로움 패러다임을 열고자한 시도는 현재 교착 상태에 놓여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다매체, 다채널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수용자의 효용 증대나 사회 전체의 공익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뉴미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여하에 따라 정보격차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며 공익성, 공공성이 강조되어야할 지상파 방송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의 문제로 인해 연일 파업을 강행하기 일쑤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구시대적 구태를 재현하는 종편사업에 진출한 신문사들과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반복되는 투명하지 못한 공영방송의 인사 과정은 이러한 정체 상태의 지속에 한 몫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단순히 새로운 방송 산업 체제를 구축함에 있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불협화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방송 산업의 영향력과 그 효과의 심각성, 중요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상황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방송사들 스스로 그들이 태생적으로 짊어진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통감하고 개선의 방향성을 설정해야 하며 정부와 국회는 진지한 협상과 논의를 통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구축하여야 한다. 한편 시청자들은 스스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능력을 갖춘 합리적 수용자로서의 능력을 배양하여야 함을 주지하여야 할 것이다.

미디어법 – 나무위키 (namu.wiki)

미디어법 개정안 통과 당시의 소회 – Could b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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